재외동포 한글 및 한국어 교육의 현황과 과제 : 법제·종교·문화운영체계를 중심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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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동포연구원장 임채완
Ⅰ. 문제 제기와 연구 범위
전 세계 한민족의 약 10%에 달하는 700만 명 이상이 재외동포로 거주하고 있으며, 거주 국가는 190여 개국에 이른다. 특히 미국(약 263만 명), 중국(약 235만 명), 러시아 및 구소련 권역(러시아 16.8만 명, 우즈베키스탄 17.5만 명 등) 순으로 재외동포가 많이 거주하고 있어 이들 국가는 대표적인 재외한인 사회로 꼽힌다. 이 연구는 미국, 중국, 러시아 세 지역을 선정하여 재외동포 한글 및 한국어 교육의 현황과 과제를 비교 분석한다. 이들 세 국가는 지리적·역사적 맥락이 상이하여 재외동포 교육의 법적 기반, 문화·종교적 환경, 교육 체계 등에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미국은 ‘다문화 자유주의 사회로서 한글학교가 주로 민간 자율로 운영’되는 반면(이민사회형), 중국은 ‘조선족 자치지역을 중심으로 한 소수민족 공교육 체계’를 갖춰 왔고(소수민족형), 러시아(및 CIS 지역)는 소련 시대를 거치며 한때 모국어 교육이 단절되었다가 ‘최근 민간 중심의 부흥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강제이주후손형). 이러한 차이는 재외동포 교육의 성과와 한계를 크게 좌우하지만, 기존 연구들은 한 국가의 사례를 개별적으로 다루거나 일반론에 머무는 경향이 있었다. 기존 연구의 한계는 국가별 상이한 법·제도적 맥락과 종교·문화적 요인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는 점이 지적된다.
이 연구의 차별성은 법제, 문화, 교육 체계 등의 동일한 관점에서 미국·중국·러시아의 사례를 비교함으로써 재외동포 한국어 교육의 공통 과제와 지역별 특수성을 함께 조명하는 데 있다. 이를 통해 각 국가에서 드러나는 제도적 한계와 교육 수요 간 괴리를 분석하고, 향후 정책 대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연구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먼저 이론적 배경에서 ‘한글교육’(Hangeul Education / Hangul Literacy Education/Education in the Korean Alphabet (Hangeul))과 ‘한국어교육’(Korean Language Education / Korean as a Foreign Language Education / Korean as a Second Language (KSL) / Heritage Korean Education) 개념을 구분하고, 관련 법·제도와 기관별 역할을 정리한다.
이어 본론애서 재외동포 한글/한국어 교육의 현황, 운영 체계, 법적 지위, 교사·교재 문제, 온라인 교육 활용, 종교·문화적 환경을 미국, 중국, 러시아 국가별로 상세히 비교 분석한다. 각 국가 사례마다 제도적 한계와 실제 교육 수요 사이의 괴리를 구체적으로 논의하고, 결론에서는 이러한 비교 분석에 기초하여 법제 통합의 가능성, 지원기관 간 협업 방안, 지역 맞춤형 정책 제언 및 교육의 공공성·중립성 제고를 위한 전략을 제시한다. 이 연구는 선행 연구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여 시사점을 도출하면서도 독창적인 비교 분석 관점을 부각함으로써 재외동포 한국어 교육 발전을 위한 종합적 청사진을 제시하고자 한다.
Ⅱ. 이론적 배경 : ‘한글교육’ vs ‘한국어교육’ 및 법·제도적 틀
1. 한글교육과 한국어교육의 개념 구분
재외동포 대상의 언어교육을 논할 때 흔히 ‘한글교육’과 ‘한국어교육’이라는 용어가 혼용된다. 엄밀히 말해 두 용어는 교육 대상과 목적에서 차이가 있다. 한글교육은 주로 해외 한인 차세대를 위한 모국어 계승 교육을 가리키며, 한국어 구어를 어느 정도 사용하는 동포 자녀들에게 한글 문자 해득과 읽기·쓰기 능력 향상을 목표로 한다. 이를테면 재미동포 사회의 주말학교들은 오랫동안 ‘한글학교’로 불리며, 학생들이 가정에서 배운 구어를 토대로 민족어 문해력을 기르는 데 초점을 맞춰 왔다. 반면 한국어교육은 보다 포괄적인 개념으로 한국어를 외국어 또는 제2언어로서 가르치는 교육을 의미한다. 한국어교육은 재외동포뿐 아니라 현지인(비한인) 학습자까지 포함되며, 말하기·듣기·읽기·쓰기의 언어 기능 전반에 대한 교육을 아우른다. 즉, 한글학교에서 이뤄지는 교육은 넓은 범주의 한국어교육에 포함되지만, 성격상 ‘계승어(heritage language) 교육’에 가깝다.
두 개념의 차이는 교육기관의 성격에서도 나타난다. 재외동포 사회에는 일찍이 한글학교와 한국학교, 한국어 과정 등이 병존해 왔다. 여기서 한국학교는 해외에 설립된 정규 한국인 대상 학교(예: 국제학교형 한국학교)로서 교과 과정을 대한민국 교육부의 인가를 받아 운영하며 주로 주재원·동포 자녀 등을 가르친다. 반면 한글학교는 현지 정규 학교와 별개로 토요일 또는 방과 후에 운영되는 민간 교육기관으로, 현지 한인사회가 설립하여 한인 2~3세 등을 가르치는 비정규 주말학교이다. 한글학교는 대체로 학급을 기초·초급·중급·고급 등으로 편성하고 주당 2~3시간 수업(언어 수업 2시간 + 문화활동 1시간 등)을 진행하는 데, 이는 미국 등지에서 일반적인 모습이다. 한편 한국어 과정은 현지의 대학교나 초·중등 학교에서 개설한 한국어 정규 과목이나 특별활동을 가리키며, 비한인을 포함한 학생들에게 외국어로서 한국어를 가르친다. 이러한 구분은 이후 각국 사례를 비교할 때 중요하게 작용한다. 이 연구에서는 ‘재외동포 한글교육’을 해외 동포사회의 한글학교 및 민족학교를 통한 모국어 계승 교육으로 한정하고, 이를 각국의 한국어교육 일반 정책과 대비시켜 논의를 전개한다.
2. 관련 법제도와 정부 정책
재외동포 교육을 둘러싼 법·제도는 대한민국 국내법과 현지 국가의 법령 두 측면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먼저 대한민국 측면에서 1997년 제정된 「재외동포재단법」과 1999년 제정된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이 재외동포의 범위와 지위 등을 규정하고 있다. 이들 법령은 재외동포를 대한민국 국적 보유자(영주권 취득자 등)와 외국 국적 동포(과거 한민족 혈통)로 구분 정의하고 있으며, 이는 재외동포 교육 지원의 대상 범위를 설정하는 기초가 된다. 또한 2001년에는 「재외국민의 교육 지원 등에 관한 규정」이 제정되어 재외국민(대한민국 국적자) 교육에 대한 원칙을 명시하였으나, 재외동포 교육의 구체적 내용이나 표준 교육과정에 대해서는 별도의 법 규정이 없다. 다만 동 규정은 해외 교육과정은 국내 교육과정을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밝히고 있어, 한국학교(정규학교)의 경우 국내 교과서를 사용하고 국가 교육과정에 준한 지도를 받는다. 한글학교처럼 비정규학교의 경우 법적 공식 지위는 없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행정지침 및 사업 형태로 여러 정책을 시행해 왔다.
1997년 설립된 재외동포재단(2023. 06. 05. 재외동포청으로 승격)은 재외동포 사회에 대한 종합 지원을 담당하는 전담 기구로서 한글학교 지원 사업을 핵심적으로 수행해 왔다. 매년 예산을 통해 전 세계 한글학교에 운영비를 보조하고 교재를 제공하며, 교사 연수와 학생 문화체험 프로그램 등을 운영한다. 재외동포재단은 한글학교 교과서로 「재외동포를 위한 한국어」 시리즈 등을 개발·보급하고, 학생용 학습 사이트인 스터디 코리안(Study Korean)을 통해 온라인 학습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교육부 산하 국립국제교육원(NIIED)도 해외 한국어교육을 지원하는 데, 주로 해외 한국학교(정규학교)와 한국교육원(공관 부설 교육문화원)을 통해 현지 한인 및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국어와 한국 문화교육을 시행한다. 특히 각국 대도시에 설치된 한국교육원은 한글학교와 현지 학교의 한국어과정을 지원하고 교사 양성에 관여하는 등 지역 거점 역할을 한다.
한편 한국어를 외국인에게 보급하는 세종학당(King Sejong Institute) 제도가 2007년부터 문화체육관광부 중심으로 도입되어 세계 각지에 세종학당 분원이 설립되었다. 세종학당은 원칙적으로 해당 국가 국민들의 한국어 학습 수요에 대응하는 공공 한국어교육기관이며, 교재는 외국인용 표준 교재를 사용한다. 그러나 일부 재외동포 밀집 지역(CIS 국가 등)에서는 세종학당이 동포 대상 한글학교의 기능을 일부 대체하거나 병행하기도 한다. 이는 뒤에서 러시아/CIS 사례에서 살펴볼 것이다. 이처럼 대한민국 정부 차원의 재외동포 교육 지원은 재외동포청(구 재외동포재단), 교육부(국립국제교육원), 문화체육관광부(세종학당재단) 등 여러 기관에 걸쳐 이루어지고 있으며, 민간 차원에서는 재미한인학교협의회(NAKS)나 재일본한글학교협의회 등 지역별 한글학교 연합망이 조직되어 있다.
3. 기관별 역할과 협력 현황
재외동포 한글/한국어 교육에서 기관별 역할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재외동포청(재단)은 전 세계 한글학교 지원의 총괄 주체로서 예산 지원과 교재 개발, 한글학교 교사 온라인 양성 과정 운영 등을 맡는다. 교육부(국립국제교육원)는 각국의 한국학교와 교육원을 통해 교원 파견 및 교육과정 자문을 제공하며, 재외국민 특별전형 등을 통한 국내 대학 진학 지원 정보를 제공한다. 교육부는 또한 한글학교 교사 자격 인증과정 등을 뒷받침하고 있다. 세종학당재단은 한국어를 배우려는 외국인 및 동포를 위해 현지 협력기관과 함께 세종학당을 설치·운영하고 커리큘럼을 제공한다. 그러나 세종학당은 주로 현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고, 동포 밀집 지역 이외에는 재외동포청의 한글학교 지원망과는 별개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었다.
이러한 다원화된 지원체계는 한편으로 다양한 수요에 대응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중복 투자나 역할 혼선의 문제가 제기되어 왔다. 미국의 경우, 한글학교가 전통적으로 동포 대상 교육을 담당해 왔는 데, 최근 외국인 성인 학습자나 다문화가정 자녀 등이 한글학교에 유입되며 학습자 구성이 다양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일부 한글학교는 세종학당이나 현지 대학 한국어과와 학습자 층이 겹치면서 갈등을 빚기도 한다. 연구자 이수연은 이러한 중복 문제를 지적하며, 한국 정부가 한글학교와 기타 한국어교육기관 간 역할 조정에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즉, 정부 부처와 지원기관 간 협업 체계를 정비하여 재외동포 교육을 보다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이 연구의 결론 부분에서도 이러한 협업 방안을 다룰 것이다.
요컨대, 이론적 배경을 통해 알 수 있듯 재외동포 한글/한국어 교육은 계승어 교육으로서의 특수성과 외국어 교육으로서의 일반성을 모두 지닌 분야이다. 이를 효과적으로 추진하려면 각 국가의 법적 환경과 교육 체계를 고려하면서 대한민국의 지원 정책을 통합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다음으로 미국·중국·러시아 세 지역의 구체적인 현황과 차이를 살펴보고, 앞서 정리한 개념 및 제도 틀 속에서 각 사례를 비교 분석한다.
Ⅲ. 현황과 운영체계
1. 미국 : 미국은 재외동포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로 2020년대 초 기준 약 260만 명 이상의 한인이 거주하고 있다. 미국 내 재외동포 한국어 교육은 주류 교육체제와 분리된 주말 한글학교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미 전역에 걸쳐 한글학교가 약 700여 개 이상 존재하며, 총 재학생 수는 4만 5천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된다. 예컨대 중서부 13개 주만 보더라도 2015년 기준 한글학교 121개교에 4,941명의 학생이 등록되어 있었다. 이러한 한글학교들은 대부분 지역 한인회, 교회, 또는 민간단체에서 설립·운영하며, 수업은 주 1회 (토요일 혹은 일요일) 2~4시간 정도 진행된다. 교육 내용은 한국어 읽기·쓰기가 중심이지만, 한국 역사와 문화, 노래나 전통놀이 등의 특별활동도 병행한다. 학급 편성은 학생들의 언어능력과 연령을 고려하여 반별 수준별 수업을 실시하는 자 구성이 다양해져, 한국계 다문화가정 아동이나 한국 문화에 관심 있는 현지인 성인도 일부 한글학교를 찾아오는 추세이다.
미국 한글학교의 운영 체계는 기본적으로 민간 자율성에 기초하지만, 점차 체계화되어 가고 있다. 각 지역별로 한글학교 협의회(예: 미주한글학교협의회, NAKS 산하 지역협회)가 조직되어 교사 연수, 표준 교재 보급, 학예발표회 등의 행사를 주관한다. 또한 대한민국 재외동포청과 현지 한국교육원(총영사관 직속 기관)이 한글학교를 지원·관리하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 예를 들어 시카고한국교육원은 관할 지역 한글학교들의 현황을 매년 조사하여 한국 정부의 운영지원금 배정 기초자료로 활용하고 있으며, 학생 수·수업 시수·교사 수 등에 따라 지원금을 차등 지급한다. 재외동포재단의 주말한글학교 지원 지침에 따르면 재외동포 학생 10명 이상이 주당 3시간 이상 한글 수업을 할 경우에만 지원금을 받을 수 있고, 그 미만이면 지원을 중단하거나 감액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이는 한글학교가 최소한의 규모와 내실을 유지하도록 유도하는 장치이다. 미국 내 주요 공관별(대사관 및 총영사관별)로 관할지역 한글학교 수와 학생·교사 통계를 보면, 로스앤젤레스, 뉴욕 등 한인 밀집 지역에 수백 개에 달하는 한글학교가 집중되어 있다. LA 총영사관 관할 남가주 지역에는 2019년 기준 237개의 한글학교가 등록되어 있는 데, 이는 10년 전 153개에서 크게 증가한 수치이다. 이처럼 미국에서는 동포 사회의 성장과 함께 한글학교 수도 꾸준히 늘어나 왔으며, 현재는 세대 교체기에 접어든 한글학교의 질적 도약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2. 중국 : 중국의 재외동포는 주로 조선족(중국 국적 한국계 소수민족)으로 구성되며, 인구는 약 235만 명으로 추산된다. 중국 내 조선족은 역사적으로 동북지역(연변 조선족자치주 등)에 집단 거주해 왔고, 중국 정부의 소수민족 정책에 따라 민족교육 체계를 발전시켜 왔다. 한인 이산이지만 중국 국민으로서 공식 학제 내 조선족 학교를 다닐 수 있었던 것이다. 한때 연변을 비롯한 동북3성(지린·랴오닝·헤이룽장성) 전역에는 조선족 초·중·고교가 1,500여 개에 달했고, 1990년대 초반에는 학생 수가 40만 명에 이르렀다. 이들 학교에서는 조선족 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선어(한국어)로 주요 과목 수업을 실시하고 중국어를 병행 교육하는 이중언어 교육이 이루어졌다. 조선족 학교 교원은 중국의 교원대학(사범대)에서 정식 양성되었고, 조선어 교재와 교과서는 지방민족출판사 등을 통해 자체 발행되었다. 이러한 체계 덕분에 20세기 후반까지 조선족은 중국 55개 소수민족 중 모국어를 가장 잘 보존한 집단 중의 하나로 평가받았다. 문맹률이 낮고 대학진학률이 높아 “어디서나 자부심을 느끼고 살아왔다”는 평가도 있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조선족 사회는 급격한 인구 감소와 이동을 겪었다. 동북 지역 농촌의 조선족 청년들이 대거 한국 등 해외로 취업 이주하거나 중국 대도시로 떠나면서, 연변 자치주 인구는 지속적으로 줄고 고령화되었다. 그 결과 조선족 학교 수와 학생 수의 급감이 일어났는 데, 2015년 통계에 따르면 동북3성의 조선족 중·고등학생 수가 약 2만 3천 명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이는 1990년대 초 40만 명에 비해 1/17 수준에 불과한 수치이다. 학교 수도 전성기 대비 80% 이상 감소하여 시골 지역의 대부분 조선족 학교가 문을 닫은 것으로 알려졌다. 학생 수가 줄자 남은 학교들에서도 한족(漢族) 학생 비율이 높아지고 있는 데, 이는 조선족 학교가 학생 수 감소로 한족 학생의 입학을 허용한 데 따른 현상이다. 한족 학생들이 늘면서 교실 언어 환경이 변화하였고, 일부 과목은 중국어로 가르치거나 교재를 중국어판으로 사용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조선족 자치주가 자체 발행하던 조선어 교재가 국가 통일편찬 중국어 교과서로 대체되는 움직임도 보고되고 있다. 2020년부터 중국 교육 당국은 전국 학교의 어문(언어)·역사·도덕 교과서를 통일 편찬본으로 쓰도록 하고, 수업도 표준 중국어(보통화)로 진행하도록 하는 정책을 단계적으로 시행 중이다. 이에 따라 연변 등 조선족 학교들도 중국어 사용을 확대하고 있어 민족어 기반 교육은 위축되고 있다.
오늘날 중국의 조선족 교육 현황은 크게 두 양상으로 나뉜다. 하나는 연변 등 전통 거주지의 민족학교 유지 노력, 다른 하나는 도시 지역 조선족 자녀의 중국어 학교 편입이다. 연변조선족자치주 정부와 교육 당국은 학생 감소에 대응하여 일부 학교를 합병·폐교하고, 남은 학교에 대해 이중언어 교육 강화 방안 등을 모색해 왔다. “연변조선족 중·소학교 이중언어 교수개혁 실시 의견” 등을 통해 조선어·중국어 병용교육의 질을 높이려는 시도가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전반적 추세인 학생 감소를 되돌리기는 어려웠다. 반면 베이징, 상하이 등 대도시로 이주한 조선족 가정의 자녀는 현지 한족 학교에 진학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집에서는 조선어를 쓰지만 학교 교육은 중국어로 받기 때문에, 한 세대 만에 한국어 사용이 약화되는 사례도 흔하다. 실제 한 조사에 따르면 중국 거주 조선족 청소년의 65.8%가 학교나 별도 교육기관에서 조선어를 배운 적이 없다고 응답했다.. 그 이유는 “어려서부터 조선어를 써서 잘하기 때문에 별도로 배울 필요 없었다”는 응답이 53.7%로 가장 많았고, “배우고 싶었으나 주변에 가르치는 곳이 없어서”라는 응답도 13.8%나 되었다. 이는 가정과 지역사회에서 자연 습득하는 경우 외에는 도시로 흩어진 조선족 청소년이 체계적으로 한국어교육을 받기가 어렵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3. 러시아 : 러시아 및 중앙아시아 등 구소련 지역의 한인 동포(통칭 고려인)는 19세기 말부터 연해주 등으로 이주한 한인들의 후손으로, 현재 러시아 약 17만 명, 우즈베키스탄 17만 5천 명, 카자흐스탄 10만 9천 명 등 약 50만 명 규모의 인구를 형성하고 있다. 이들은 소련 시대에 강제이주와 동화정책을 겪으며 모국어 상실 위기를 겪었던 집단이다. 1937년 스탈린 정권의 중앙아시아 강제이주 이후 고려인들은 러시아어나 현지 언어를 주요 생활어로 사용하게 되었고, 한글 교육은 수십 년간 공식적으로 중단되었다. 일부 민간에서 극소수 한글 신문을 발행하거나 가정에서 구전으로 한국어(고려말)를 유지했으나, 3세대 이후에 전반적으로 한국어 구사능력이 급격히 저하되었다. 1980년대 후반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와 1991년 소련 해체를 전후로 고려인 사회에서는 민족문화 부흥 운동이 일어났다. 중앙아시아와 러시아 각지에 고려인협회가 조직되고, 잊혀져가던 한국어를 되찾기 위한 한글학교 설립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1989년 경부터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러시아 연해주 등지에서 한글학교 또는 한국어 강좌가 속속 개설되었는 데, 1991년 소련 붕괴 당시까지 소련 전역에 약 12개의 한글학교가 운영되고 있었다고 보고된다. 러시아 이르쿠츠크, 하바롭스크 등에 한글학교 혹은 고려문화센터 산하 한국어강습소가 설립되었고,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등에서도 고려인협회 주도 한글학교가 세워졌다. 이 시기 한글학교들은 모두 민간 주도로 현지 고려인 사회와 한국의 일부 후원자들의 성금으로 운영되었다. 광복 이후 한 동안 고려인 동포에 무관심했던 한국 정부도 소련과 수교한 1990년을 기점으로 이 움직임에 뒤늦게 주목하게 되었다.
1990년대 초반, 대한민국의 시민단체와 지방자치단체들도 고려인 한글학교 지원에 나섰다. 대표적인 사례로 광주-전남 지역민들이 성금을 모아 러시아·중앙아시아에 여섯 개의 “광주한글학교”를 설립한 일이 있다. 이는 한국 내 민간이 주도하여 현지 고려인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자 한 최초의 시도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러한 한글학교들은 재원 부족과 조직 미비로 수년 내 상당수가 폐쇄되었다. 자료에 따르면, 199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타슈켄트 등을 포함한 5개 광주한글학교가 모두 문을 닫았고, 유일하게 남은 타슈켄트 학교도 교명을 변경하여 2011년부터 세종학당으로 전환되었다. 일각에서는 “한국 정부나 1997년 설립된 재외동포재단이 했어야 할 역할을 초기에 광주지역 민간이 했지만 지속되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실제로 재외동포재단이 설립된 1997년 이후에야 비로소 CIS 지역 한글학교에 대한 체계적 지원이 시작되었다. 재단은 2000년대에 CIS 지역 동포사회 실태조사 및 한글학교 현황 조사를 실시하고, 현지 수요에 맞는 지원책을 마련하고자 했다. 그 결과 현재는 중앙아시아와 러시아에 걸쳐 100여 개의 한글학교(또는 한국어강좌)가 운영되고 있으며, 재외동포재단 지원을 받는 학생 수는 약 8,368명에 이른다. 2024년 통계에 따르면, 러시아·CIS 지역에 117개의 한글학교가 등록되어 있고, 교사 634명, 학생 8,368명이 재학 중이다. 이는 미국이나 일본 등에 비하면 작은 규모지만, 1990년대 초 한 자릿수에 불과했던 것과 견주면 상당한 성장이 이루어진 것이다.
현재 러시아 및 CIS 고려인 사회의 한글교육은 세 갈래로 이루어진다. 첫째, 고려인협회 또는 한인회 주관의 한글학교이다. 각 국가별 고려인연합회 산하에 주말학교를 운영하거나, 한국에서 파견된 코이카(KOICA) 봉사단원 등이 중심이 되어 현지인 대상 한국어 강좌를 여는 식이다. 예컨대 카자흐스탄 알마티의 고려인문화중앙에서는 한국어 교실을 열고, 해마다 한글 글쓰기 대회 등을 개최해 학습 성과를 공유한다. 둘째, 현지 정규 교육기관 내 한국어 과정이다. 일부 국가에서는 초·중등학교 정규과목이나 대학교 전공으로 한국어학과가 개설되어 있다. 우즈베키스탄의 일부 공립학교에서는 1990년대 후반 시범적으로 한국어를 제2외국어로 가르치기도 했으며, 현재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몇몇 국가 대학에 한국어학과가 설치되어 많은 고려인 및 현지 학생들이 수학 중이다. 셋째, 세종학당 및 한국문화원 등의 한국 정부 지원 기관이다. 타슈켄트, 알마티, 모스크바 등에 세종학당과 한국문화원이 설립되어 현지인과 동포들을 대상으로 한국어 강좌를 제공한다. 특히 타슈켄트의 세종학당은 앞서 언급한 광주한글학교의 후신으로, 현재는 재외동포재단과 세종학당재단의 협약 아래 운영되고 있다.
Ⅳ. 법적 지위와 지원 제도
1. 미국 : 미국 내 한글학교는 미 교육법상 공식 학제에 속하지 않는 비정규 교육기관이다. 따라서 미국 정부 또는 주정부의 재정 지원이나 학력 인증을 받지는 못한다. 다만 일부 한인 밀집 지역 공립학교에서는 방과후 프로그램이나 정규 제2외국어 과목으로 한국어를 채택하기도 하는 데, 이 경우 해당 수업은 미국 교육제도 내에서 진행되는 한국어교육이다. 예를 들어 캘리포니아주의 몇몇 공립 고등학교에서는 한국어를 외국어 선택과목으로 개설하여 한인 학생들과 타인종 학생들이 학점 취득을 위해 한국어를 배우게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공립학교 한국어 과정은 어디까지나 외국어로서의 한국어교육이며, 주말 한글학교처럼 한인 정체성 함양을 목표로 하지는 않는다. 결과적으로 미국 재외동포의 모국어 계승은 한글학교라는 사립 형태 주말학교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으며, 이들 한글학교의 법적 지위는 민간 비영리단체 또는 교회 부설 교육프로그램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한글학교에 대한 공식적인 인정이나 학력 인증은 없지만, 대한민국 정부가 부여하는 일정한 인증과 포상 제도가 있다. 재외동포청은 일정 요건을 갖춘 한글학교를 등록 관리하고 있으며, 우수 운영학교와 장기근속 교사에 대한 포상을 실시한다. 또한 앞서 언급한 운영비 지원, 교재 공급, 교사 연수 외에, 한글학교 학생들을 위한 한국 방문 연수(예: 모국연수, 한국어 말하기대회 초청)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사기를 진작하고 있다. 미국 한글학교 학생들은 필요시 SAT Subject Test 한국어(※2021년 폐지)나 AP 한국어 과목(현재 미개설)을 희망하기도 하지만, 현재 SAT 한국어 시험은 폐지되어 한글학교 학습자의 학력 평가 공인 기회가 제한된 상태다. 대신 학생들은 한국어능력시험(TOPIK) 등에 응시하거나, 한글학교 자체적으로 레벨 테스트를 통해 학업 성취를 측정받는다.
2. 중국 : 중국 조선족 학교의 법적 지위는 중국 정부가 보장하는 소수민족 교육기관이다. 중국 헌법과 민족구역자치법 등은 소수민족이 자체 언어로 교육 받을 권리를 명시하고 있고, 조선족은 이에 근거해 자치지역에서 모국어 교육을 시행해 왔다. 연변조선족자치주 등에서는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조선어를 주된 교학 언어로 사용하는 학교들이 정규 학제로 운영된다. 따라서 이들 학교의 졸업자는 중국 내 다른 학교 졸업자와 동등한 학력을 인정받으며, 대학 입시에서도 민족언어 수험생으로서 약간의 혜택(언어 선택권이나 가산점 등)을 받았다. 하지만 최근 중앙정부 차원에서 민족교육에 대한 정책 기조 변화가 감지된다. 앞서 언급한 표준 교과서 적용과 보통화 수업 확대 조치는 ‘중화민족 공동체 의식 강화’를 내세우는 국가 통합 정책과 맞물려 있다. 시진핑 주석은 2021년 중앙민족공작회의에서 “민족분열의 독소를 숙청해야 한다”고 언급하며, 소수민족 교육에서 애국주의와 국가공동체 의식을 강조했다. 이러한 이념적 기조는 조선족 교육 정책에도 영향을 주어, 자치의 형식은 유지하더라도 실질적 민족언어 사용 비중은 줄이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우려가 있다. 그럼에도 공식적으로는 연변자치주의 지위가 유지되고 있어, 지역 당국은 “자치주의 존재는 조선족을 하나로 묶는 구심점이기에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요컨대 법적·제도적으로는 조선족 학교가 여전히 존재하지만, 정책 환경이 소수 언어에 불리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대한민국 정부의 경우, 중국 조선족 사회에 대해서는 직접적 교육 지원은 제한적인 편이다. 이는 중국의 내정 문제에 해당할 수 있어 조심스러운 측면과 중국 당국이 외국 정부의 소수민족 교육 개입을 허용하지 않는 현실 때문이다. 과거 1990년대 초 한중 수교 이후 한국 정부는 조선족 학교 교육을 도우려 몇 가지 사업을 시도했다. 예컨대 한국어 교사들을 단기 파견하여 조선족 교사를 대상으로 한국어 교수법 연수를 하거나, 한국의 국어교육 전문가를 동북3성 학교에 순회 파견해 쓰기·읽기 교육을 지원한 적이 있다. 또한 교과서 지원을 위해 한국 역사나 문화 관련 도서 보내기 운동도 있었다. 1990년 서울에서는 ‘재소동포를 위한 사랑의 책 보내기 운동’이 전개되어 다수의 책이 연변과 중앙아시아 고려인 사회에 보내졌으나, 정작 현지에는 책을 비치할 도서관 시설이 부족하여 활용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이런 사례에서 보듯 중국 조선족 교육에 대한 한국 측의 지원은 비공식 교류나 물자 지원 형태로 이루어졌고, 제도적인 협력은 제한적이었다. 다만 민간 차원에서는 현재도 한국의 일부 지방자치단체나 민간단체가 연변의 조선족 학생들을 위한 장학 사업, 교류캠프 등을 운영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자매결연을 맺은 한국 지방 교육청이 조선족 학교와 교사 교류를 하거나, 조선족 청소년을 초청해 모국 연수를 시행하는 등의 사업이 간헐적으로 이뤄진다. 이런 활동은 공공정책이라기보다 민간교류 성격이 강하며, 중국 내 조선족 교육체계의 변화에 직접 영향을 주지는 못한다.
3. 러시아 및 CIS : 러시아 및 CIS 국가들에서 고려인의 한국어 교육은 공식 소수민족어 교육으로 인정받는 경우가 드물다. 소련 시기 고려인은 명목상 소수민족이었으나, 다른 중앙아시아 소수민족들과 달리 자치구 획득에 실패하여 (1937년 연해주 한인자치구 계획 무산) 모국어 교육에 제도적 권리를 갖지 못했다. 현재 러시아의 경우 한국계 러시아인을 위한 별도 공립학교나 교육과정은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일부 지역에서 선택 과목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정도다. 예를 들어 러시아 연해주(프리모르스키) 지역에서는 2010년대 들어 한-러 협력으로 중학교 한국어반이 몇 군데 생겨났다. 블라디보스토크 등 극동지역 고등학교에서는 한국어를 제2외국어로 선택해 가르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외국어 교육으로서의 한국어지, 고려인을 위한 민족교육이 아니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에서도 고려인이 집단 거주하는 특정 지역에 한국어를 소수민족어로 가르치는 공립학교는 거의 남아있지 않다. 1938년까지는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에 고려인 학교들이 존재했지만 소련 당국이 모두 폐지했다. 현재 우즈베키스탄 등에서 몇몇 공립학교가 방과후 한국어반을 운영하는 정도이며, 그마저도 재정과 인력 부족으로 지속 여부가 불투명하다. 따라서 고려인의 모국어 교육은 법적 공교육 체계에서 거의 배제되어 있고, 대신 민간 문화활동 또는 외국문화교육의 일환으로 간주된다.
대한민국은 CIS 고려인 지원을 위해 2007년 「고려인동포 지원사업」을 수립하고 정부 차원의 예산을 배정하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현지 한국어강사 파견, 교재 지원, 초청연수 등이 진행되었다. 파견 교사는 한때 코리안 드림 프로그램 등을 통해 수십 명씩 중앙아시아 학교에 보내졌으나, 현지 교육제도 내 정규 교사로 인정받지 못해 보조교사 수준에 머무르곤 했다. 최근에는 KOICA나 봉사단으로 파견된 한국어 교원이 주로 한글학교나 대학교 한국어과에서 활동 중이다. 법적 기반 없이 파견된 이들의 신분은 공식 교사가 아니므로, 현지에서 담당교사와 협력해 수업을 돕거나 방과후 수업을 전담하는 식이다. 이처럼 파견 인력의 한계로 인해, 결국 현지 고려인 스스로 교사로 서야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현재 고려인 한글학교 교사 중에는 한국 유학을 다녀온 젊은 고려인들이 조금씩 늘고 있으나, 절대 수가 부족하다.
Ⅴ. 교사 및 교재 문제
1. 미국 : 미국 한글학교의 교사진은 상당수가 교육 자격증이 없는 봉사자들로 구성된다. 한글학교 교사들은 대부분 현지 한인 1세 또는 1.5세, 혹은 유학생·주재원 배우자 등으로 한국어 모어 화자라는 공통점은 있지만, 전문 교원 양성과정을 거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따라서 교육 경력이 짧고 교사 수급의 변동이 심한 문제가 지적된다. 일례로 한글학교 교장은 대부분 자원봉사자로 학교 행정을 맡고, 교사들도 주말에만 파트타임으로 수업을 하기 때문에 교사 풀(pool)의 잦은 교체가 발생한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재미한글학교협의회(NAKS)와 한국교육원에서는 교사 연수를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매년 재외한글학교 교사 초청연수를 실시하여 우수 교사를 국내로 불러 교수법 연수와 문화체험을 제공하고, 온라인으로는 한글학교 교사 사이버 연수 및 한국어교원 양성과정(온라인 학위과정) 등을 운영하고 있다.2023년 재외동포청은 한글학교 교사의 전문성 향상을 위해 사이버대학과 연계한 온라인 학위 취득 과정 지원 사업을 시작하여, 선발된 교사들이 2년간 한국어학·한국어교육 등 과목을 이수하면 학위를 취득하도록 돕고 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장기적으로 전문 교원 인력을 양성하는 것이 목표이다.
교재 측면에서, 과거에는 각 한글학교가 자체 제작한 교재나 한국의 초등학교 교과서, 또는 시중 한글 학습서를 혼용하여 가르쳤다. 통일된 교재가 없던 탓에 교육 내용의 연계성과 수준 관리에 어려움이 있었으나, 2010년대 이후 표준 교재가 보급되면서 상황이 개선되었다. 현재 미국 대부분의 한글학교에서는 대한민국 교육부와 재외동포재단 산하 국제한국어교육재단(IKEF)이 개발한 「재외동포를 위한 한국어」 시리즈나 국립국어원의 「한글학교 한국어」 교재 등을 사용한다. 이들 교재는 영어권 학습자를 염두에 두고 구성되어 기초 수준부터 단계별로 학습할 수 있게 되어 있으며, e-Book 형태로도 제공되어 온라인 수업에 활용할 수 있다. 미국 내 한글학교 협의회(NAKS) 차원에서도 표준 교육과정안을 마련하여 각 학교가 유치반부터 고등부까지 일정 수준의 내용을 가르치도록 권고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글학교마다 학생 구성과 여건이 달라 교재 활용도에는 편차가 있다. 일부 소규모 한글학교는 교재를 끝까지 다루지 못하고 기초 회화 위주로 반복하거나, 반대로 우수한 학생들은 주말학교 외에 가정학습을 통해 진도를 앞서나가기도 한다. 결국 교사의 지도 역량에 따라 교재 활용 효과가 크게 좌우되는 실정이다.
2. 중국 : 중국 조선족 학교의 교사들은 대부분 중국 국적의 조선족으로, 중국의 교원양성기관을 졸업한 정교사들이다. 이들은 중국 교육 제도와 교사고시에 따라 임용되므로, 교육학적 전문성 면에서 강점을 지닌다. 그러나 모국어 세대교체라는 문제가 있다. 기성 교사들은 조선어에 능통하지만, 젊은 조선족 중에는 중국어를 모어로 사용하는 경우가 늘면서 조선어 구사 능력이 약한 교사 세대가 등장하고 있다. 또한 학생 감소로 학교 통폐합이 이루어지면서 조선어 교사 일자리가 줄어들어, 우수 인재들이 교직을 기피하는 경향도 있다. 교재의 경우, 과거에는 조선족 자치주나 북한의 지원으로 조선어판 교과서가 제작됐으나, 앞서 언급한 대로 최근에는 주요 교과서를 중국어 통일본으로 대체하고 있다. 현재 조선족 학교에서 조선어로 배우는 과목은 국어(조선어)와 일부 예체능, 그리고 저학년 일부 과목 정도로 축소되었다는 보고가 있다. 특히 수학·과학 등은 일찍부터 중국어로 전환되었고, 역사·도덕 역시 국가 편찬 교과서를 사용하게 되면서 조선어 사용영역이 크게 축소되고 있다. 이로 인해 교사들은 모국어 교수 기회를 잃고, 학생들의 조선어 문해 능력도 저하될 위험이 있다. 실제로 조선족 청년층 중에는 모국어는 말은 하지만 한글 읽기·쓰기 수준은 낮은 이들이 점차 늘고 있다고 한다.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한국과 가까워지고 정보 접근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벌어지는 현상인데, 이유는 정규 교육에서 한글 사용 훈련이 줄었기 때문이다.
조선족 학교 외에, 중국 내 한국인 주재원이나 한인 기업인의 자녀들을 위한 한국학교들이 베이징(北京한국국제학교), 상하이(上海한국학교) 등지에 설립되어 있다. 이들 학교는 한국 교육부 인가 정규과정으로, 거의 모든 수업을 한국어로 진행하며 대한민국 교과서를 사용한다. 다만 이러한 한국인학교는 어디까지나 한국 국적 학생 대상이라서, 중국 국적 조선족 학생들은 다닐 수 없다(중국 당국이 외국인학교에 자국민 입학을 허용하지 않음). 따라서 중국 조선족 학생들이 한국식 교육을 받고자 할 경우, 중도에 한국으로 유학을 오는 방법 외에는 대안이 없다. 실제로 2000년대 이후 한국의 중·고등학교, 대학교에 조선족 유학생이 상당수 진학하여 한국어를 체계적으로 배우는 경향이 있었다. 이들은 초기엔 언어 장벽에 부딪혔으나, 한국 사회에 적응하며 한국어 실력을 향상시키고 있다. 한 조사에서 중국 거주 조선족 청소년 중 77.6%는 “장래 취업에 한국어 능력이 도움된다”고 답했고, 81.4%는 “자녀에게 조선어(한국어)를 가르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이는 조선족 사회 내부에서도 한국어 교육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정작 현지에서 배울 통로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중국 대도시에는 일부 사설 한국어학원이나, 조선족 사회가 자체 개설한 한글학교(주말학교)도 소규모로 존재하지만, 중국 정부 공식 통계에 잡히는 수준은 아니다. 한편, 중국에서도 한국 드라마와 K-POP 등의 대중문화를 통해 젊은 세대가 자연스럽게 한국어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공식 교육과 별개로 한국어 학습 동기를 부여하고 있지만, 오락 위주의 피상적 습득에 머무를 위험도 있다.
3. 러시아 및 CIS : 러시아 CIS 지역 고려인 한글학교의 교사 부족 문제는 매우 심각한 한계로 지적된다. 애초에 모국어 구사자가 적고 노년층에 치우쳐 있어 가르칠 인력이 희소하다. 1990년대 한글학교 초창기에는 고려인 1세대 원로들이나 북한에서 망명한 소련파 출신 등이 나서서 학교를 이끌었지만, 이들의 연령이 높아지면서 2000년대 들어 세대교체가 불가피해 졌다. 그러나 2세대 이후 고려인 중에는 한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이가 드물어, 교사 인력 풀이 사실상 공백 상태였다. 이를 메우기 위해 한국어 전공 한국인들이 파견되었지만, 언어와 문화가 다른 한국인이 현지 고려인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에는 의사소통과 정서적 한계가 있었다. 이상적인 것은 젊은 고려인 교사를 양성하는 것이나, 현지에서 한국어를 잘하는 고려인 청년은 오히려 한국으로 이주하거나 더 나은 직업을 찾아 교육계에 남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에는 알마티, 타슈켄트 등지의 대학 한국어과 졸업생들(고려인 및 현지인 모두)이 한글학교 교사로 참여하며 조금씩 인력풀이 형성되고 있다. 한국 정부와 재외동포청은 이들을 대상으로 사이버 교원 교육과정 등을 제공해 교수법을 연마시키고 있지만, 여전히 교사 1인당 학생 수가 높고(평균 1:13 이상으로 추정), 잦은 이직으로 연속성이 부족하다.
교재의 경우 초창기에는 절대적 교재 부족에 시달렸다. 1990년대 초 부활한 한글학교들은 마땅한 교과서가 없어, 한국에서 가져온 동화책이나 월간지, 북한에서 들여온 교본 등을 임시로 활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에서는 1990년 “사랑의 책 보내기” 운동 등을 전개하여 CIS에 대량의 도서를 보냈지만, 현지에서는 그것들을 체계적으로 교육에 활용할 인프라(도서관, 커리큘럼 등)가 미흡했다. 2000년대 이후 재외동포재단이 표준 교재를 보급하면서 상황이 나아졌다. 현재 CIS 한글학교들도 미국 등과 동일한 「재외동포를 위한 한국어」 교재나 「맞춤 한국어」 시리즈 등을 사용한다. 그러나 언어 환경이 전혀 다른 러시아어권에서, 한국어 설명 없이 현지어 설명이 없는 교재를 쓰는 데 어려움이 있어 재단은 영어권용 외에 러시아어권용 교재도 따로 개발했다. 러시아어 해설이 달린 교재는 고려인 학생뿐 아니라 현지인 학습자도 함께 쓰기 용이하여, 현재 세종학당 등에서도 활용 중이다. 한편 구소련 고려인들이 전통적으로 사용한 고려말(옛 북한 방언 섞인 한국어)과 현대 서울 표준어 간 차이도 문제다. 교재나 수업은 현대 한국어를 가르치지만, 집에서 조금이나마 한국어를 들은 학생들은 옛 표현을 쓰거나 억양이 달라 초기에 혼란을 겪는다. 교사들도 표준어 구사가 능숙하지 않을 경우 학생들을 잘못된 방언으로 지도할 수 있어, 교사 자체의 한국어 능력 향상도 중요한 과제다.
Ⅵ. 온라인 교육과 접근성
1. 미국 : 미국은 인터넷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어, 한글학교 교육에도 온라인 자원 활용이 비교적 활발하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많은 한글학교들이 일시적으로 대면 수업을 중단하고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한 바 있다. 이를 통해 ZOOM 등을 이용한 원격 한국어 수업 경험이 축적되었고, 이후 대면 수업 재개 후에도 온라인 학습자료 공유나 혼합형 수업(blended learning)을 도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앞서 소개한 스터디코리안(Study Korean) 웹사이트는 학생용으로 동요, 동화, 역사만화 등 콘텐츠를 제공하여 자율학습을 지원한다. 또한 NAKS에서는 자체적으로 온라인 자료실을 운영하여 모범 수업 사례 영상, 퀴즈렛(Quizlet) 단어장, 파워포인트 수업자료 등을 교사들끼리 공유하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온라인 콘텐츠의 확산은 지리적으로 넓게 분포한 미국 한글학교들 사이의 교육 격차를 완화하고, 소규모 학교도 양질의 자료를 손쉽게 구할 수 있게 해주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지나친 온라인 의존이 학생들의 한글학교 출석률 저하로 이어질 수 있고, 대면을 통한 공동체 의식 함양 측면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따라서 온라인 자원은 보조적 수단으로 활용하되, 오프라인 한글학교의 본연의 역할(또래 한인 2세들 간의 교류와 정체성 형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2. 중국 : 중국의 인터넷 환경은 정부 검열 등으로 제한이 있으나, 조선족들은 비교적 IT 활용도가 높은 편이다. 연변 지역에는 조선족을 위한 온라인 포털과 SNS 커뮤니티가 발달해 조선어 뉴스, 문학 등을 공유하고 있다. 조선족 청년들은 스마트폰 메신저로 한글 타자를 사용해 소통하기도 한다. 이런 점은 언어 유지를 돕는 긍정적 요인이다. 그러나 공식적인 온라인 한국어 교육 플랫폼은 한국처럼 활성화되어 있지 않다. 앞서 언급한 대한민국의 스터디 코리안 사이트도 중국에서는 접속이 원활하지 않을 수 있고, 유튜브의 한국어 강의 콘텐츠 등도 차단된 경우가 많다. 대신 중국 내 조선족 대상 유튜브 채널이나 온라인 강좌가 일부 생겨나고 있다. 예컨대 연변 TV에서는 조선어 교육 프로그램을 방영하거나, 조선족 교사가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인터넷 강의가 있다. 다만 이러한 자발적 온라인 교육은 영리 목적 학원 강의인 경우가 많아 모든 학생이 접근하기는 어렵다.
3. 러시아 및 CIS : 러시아/CIS 지역은 지리적으로 광범위하여, 인터넷을 통한 원격 교육이 특히 유용할 수 있다. 실제로 재외동포청은 카자흐스탄 등지에서 원격 한국어 강좌 시범 사업을 운영한 바 있다. 한국의 화상교육 시스템을 통해 주요 도시에 센터를 마련하고, 원격으로 수업을 송출하면 지방의 고려인 학생들이 모여 시청·학습하는 형태였다. 그러나 인프라 유지비와 현지 행정 협조 문제로 지속되지는 못했다. 현재는 고려인 밀집지마다 인터넷 접속은 가능하기 때문에, 스터디 코리안 웹사이트나 YouTube 한국어 교습 영상 등을 개인적으로 활용하는 학생들이 있다. 특히 청년층은 한류 콘텐츠를 통해 자연스레 한글 자모와 기본표현을 익힌 후, 온라인 강좌로 심화학습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다수 노년·장년 고려인에게 인터넷 학습은 보편적이지 않고, 어린 학생들도 정규 학교 공부로 바빠 자율 온라인학습에 한계가 있다. 코로나19 시기 CIS 지역 한글학교들도 온라인 수업을 시도했으나, 시차 문제와 교사 IT 활용 역량 부족 등으로 적극적이지는 않았다. 향후 온라인을 통한 한국-고려인학교 간 자매결연 수업이나, 현지-한국 협력 화상수업 등을 도입한다면 거리의 한계를 넘어서는 교육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Ⅶ. 종교·문화적 환경
1. 미국 : 미국 한글학교의 많은 부분이 한인 교회와 관련이 있다는 점도 특징적이다. 역사적으로 미주 한인사회에서 교회는 한인 공동체의 중심 역할을 해 왔고, 자연스럽게 주일학교 형태로 한글교육이 이루어져 왔다. 현재도 상당수 한글학교가 교회 부설로 운영되며, 교회 시설을 교실로 사용하고 있다. 이는 시설 확보와 자원봉사 측면에서 장점이 있지만, 종교적 중립성에 대한 논의도 있다. 일부 비기독교 한인들은 교회 환경에 아이를 보내는 것에 거부감을 표하기도 하며, 또한 종교색이 짙은 일부 학교의 경우 한국 역사나 문화를 가르칠 때 선교적 관점을 혼합하는 사례도 보고된 바 있다. 이에 대해 한글학교 협의회 차원에서는 “한글학교에서는 특정 종교나 정치이념 교육을 지양한다”는 윤리 강령을 마련해 공표하고, 공립학교나 한인회관 등 중립적인 장소에서 수업을 하는 대안도 모색하고 있다. 현재 LA, 뉴욕 등지에는 교회가 아닌 한인회 운영 토요학교도 다수 존재하며, 일부는 현지 한인 소유 학원 건물 등에서 임대 형식으로 운영된다. 이러한 움직임은 한글학교 교육의 공공성 확보를 위한 노력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미국 사회의 다문화 환경 속에서 한글학교는 문화 정체성 함양의 공간이라는 기능을 갖는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한국의 전통명절 행사(설날 세배, 추석 송편 만들기 등)를 체험하고 한국어로 또래와 소통하면서, 이중문화 정체성을 긍정적으로 형성하게 된다. 한글학교를 다닌 동포 청소년들은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한국어 유지 및 한민족 정체성 의식이 높다는 조사도 있다. 다만 세대가 내려갈수록 가정 내 한국어 사용이 줄고 영어 동화가 심해져 한글학교만으로는 부족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부모 세대는 자녀의 한국어 실력이 기대에 못 미칠 경우 교육 수요와 공급의 괴리를 체감하게 된다. 실제로 많은 한인 가정에서 주말 한글학교에 몇 년 보내다가 아이가 싫어하거나 성과가 더디면 중도에 그만두는 일이 빈번하다. 이는 학부모의 높은 기대(한국학교 다니듯 유창하게 배우길 기대)와 한글학교의 한정된 교육량(주 2-3시간) 사이의 간극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괴리를 해소하려면, 한글학교 수업 외에 가정에서 한국어 사용을 늘리고, 지역사회에서도 한국어 노출 기회를 늘리는 노력이 필요하다. 미국 한글학교들은 방과후 한국어 교실 증설, 한국 문화동아리 운영 등 보충적 활동을 모색하고 있으나 인력과 재원 한계로 쉽지 않은 실정이다.
2. 중국 : 중국 조선족 사회는 한국이나 미국의 한인사회와 달리 교육 영역에서 종교의 영향이 거의 없었다. 이는 공산주의 이념 아래 국가가 교육을 주관했기 때문이다. 조선족 중에는 기독교 신자도 꽤 있지만, 이들은 교회에서 종교활동을 할 뿐 학교 교육에 종교를 끌어들이지는 않는다. 따라서 조선족 학교 교육은 세속적이고 국가주의적 성격이 강했다. 한편 문화적으로 집단주의와 “조선족은 중국인”이라는 정체성 교육이 강조되었다. 그러나 개방화 이후 한국과의 교류가 늘면서 조선족 청년층은 자신들의 민족 정체성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중국 사회에서 한족 동화 압력이 커질수록 조선족 스스로 민족문화 보존의 중요성을 깨닫는 역설적 효과도 있다. 2022년 연변자치주 70주년을 맞아 한 언론은 “차세대의 한족화 심화로 정체성 위기가 고조”되었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조선족 청소년들의 한민족 의식 저하와 모국어 기피가 우려된다는 목소리가 중국 내외에서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같은 조사에서 조선족 청소년의 91.2%가 “조선족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83.3%가 “조선족 청소년은 조선어 능력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답해 긍정적인 면도 보였다. 이는 제도적 뒷받침만 있다면 상당수 조선족 청년들이 모국어 계승 의지를 갖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3. 러시아 및 중앙아시아 : 고려인 사회에서 종교는 이중적 역할을 해 왔다. 소련 시기에는 신앙이 탄압되어 대부분 무종교화되었으나, 1990년대 이후 한국의 개신교 선교사들이 대거 중앙아시아에 들어가 고려인 교회를 세웠다. 이 과정에서 교회들은 선교 수단으로 한국어반을 운영하거나 성경 공부를 빙자해 한글교육을 제공했다. 자연히 교회에 다니는 고려인들은 한국어를 접할 기회가 늘었지만, 비기독교 고려인과의 문화적 괴리가 생기기도 했다. 현재도 몇몇 지역 한글학교는 현지 한인 선교사가 운영하는 교회 부설로 되어 있다. 이는 재정적으로 도움을 주나, 교육 내용에 종교 색채가 첨가될 위험이 있다. 예컨대 어떤 교재로 성경 구절을 암송시키는 등의 사례는 공교육 관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이에 대해 재외동포청 등은 지원 시 특정 종교 편향이 없는 중립적 운영을 원칙으로 내걸고 있다. 다행히 요즘 젊은 고려인 세대는 종교보다 실리를 중시해, 한글학교도 종교를 떠나 문화교육 공간으로 여기는 추세다. 고려인 문화행사(예: 나브루즈 등 현지 명절, 고려인강제이주 추모행사 등)에서 한국어 노래 경연이나 전통 무용 등이 펼쳐지며, 한국어 교육이 공동체 문화의 일부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문화적 맥락은 미국이나 한국과 또 다른 고려인만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즉, 고려인들은 자신들이 한국인이면서도 러시아/중앙아시아 문화의 일부라는 혼합 정체성을 갖고 있으며, 한국어를 배우는 동기는 단순한 민족의식이라기보다 현실적 필요(한국과의 비즈니스, 취업, 이주 등)와 문화적 호기심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Ⅷ. 한계와 괴리
1. 미국 사례의 제도적 한계와 교육 수요 간 괴리 : 미국의 재외동포 한글교육은 풀뿌리 사회에서 시작되어 양적으로 성장해 왔지만, 공교육 부재 속에 운영되다 보니 전문성, 지속성 면에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동포 사회 내부의 수요는 세대 교체와 함께 질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초기 이민 세대는 한국어보다 영어 교육에 치중하여 “한국어는 몰라도 된다”는 인식도 있었으나, 오늘날 다문화·글로벌 시대를 맞아 오히려 2세들에게 한국어와 한국문화 교육이 정체성 확립과 미래 자산으로 중요하다는 의식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정규 학교 교육과 병행해야 하는 여건상 주말학교만으로는 충분치 않고, 학생들의 언어 수준 편차가 커지는 현실에서 한글학교 교사들은 효과적인 교수법을 찾는 데 어려움을 토로한다. 이는 미국 한글학교 전체의 고민으로, “다양한 배경의 학생들을 모두 포용하면서도 수준별로 성취를 높일 수 있는 교육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요구로 나타난다. 요컨대 미국에서는 재외동포 교육 수요는 고도화·다변화되고 있으나, 이를 뒷받침할 제도적 기반(공립 교육편성, 전문교원 확보 등)은 미비하여 괴리가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결론 부분에서 한글학교의 체계적 시스템 구축과 정부 차원의 적극 개입 필요성으로 이어진다.
2. 중국 사례의 한계와 교육 수요 간 괴리: 중국 조선족 사회의 한국어 교육은 과거 국가 체제 내에서 안정적으로 이루어졌으나, 인구구조 변화와 국가 정책 변화로 큰 전환기를 맞고 있다. 교육에 대한 수요 측면에서는 조선족 부모들도 자녀의 중국어 경쟁력을 염려하여 일부러 한족 학교에 보내거나, 집에서도 중국어 위주로 대화하는 사례가 늘었다. 즉, 부모 세대의 교육열이 모국어 유지보다 경제적 실용성에 쏠리면서, “한국어는 실생활에 직접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는 한류 영향과 한국과의 교류 확대를 보며 한국어 능력은 자산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계층도 존재한다. 이러한 내부 수요의 분화에 비해, 공급 측면에서는 과거와 같은 공공지원을 지속하기 어려워 괴리가 발생하고 있다. 조선족 학교의 급감은 결국 조선족 사회 차세대의 모국어 학습 기회를 축소시키고, 대안으로서의 사교육이나 교류 역시 충분치 않다. 특히 지역 간 격차가 커서, 연변 등에서는 그래도 모국어 환경이 남아있지만, 다른 지역의 조선족들은 한국어를 접할 기회가 거의 없다. 결과적으로 중국에서는 민족교육에 대한 제도적 틀(자치주 학교)은 유지되고 있으나 실효성이 떨어지고, 그 사이에 동포 사회의 언어 유지 수요와 국가정책 간 괴리가 확대되는 형국이다. 이는 향후 한국 측 지원이 보다 온라인 콘텐츠, 장학 프로그램 등의 비공식 경로를 통해서라도 이루어져야 할 필요성을 시사한다.
3. 러시아/CIS 사례의 한계와 교육 수요 간 괴리 : 고려인 사회의 한국어 교육은 언어 단절의 역사를 극복하려는 노력 속에서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교육 수요를 보면, 구소련 붕괴 후 한국과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상당수 고려인들이 한국 취업이나 이주를 희망하고 있어 한국어 학습 열망은 높다. 1989년 조사에서 이미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의 한국어 교육열이 고조”되어 있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공급 측면에서 제도적 기반이 없다 보니, 오직 열성적인 개인과 민간 후원에 의존해야 했고, 그 결과 안정적 교육 체계 구축에 실패한 경우가 많다. 예컨대 광주한글학교처럼 단기간에 문을 닫는 사례들이 속출하며, 학생들은 연속적 교육을 받지 못했다. 한국 정부의 지원도 초기에는 미흡하여 1990년대에 실질적 도움을 주지 못했고, 뒤늦게 예산 지원을 시작했지만 언어 장벽과 인력 부족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는 못했다. 고려인 사회 내부에서도 한국어를 잘 모르는 세대가 주류가 되어, 정작 배우고 싶어도 가르칠 사람이 없는 역설이 발생한다. 이처럼 교육 수요는 존재하나 공급의 제도화에 한계가 뚜렷한 것이 CIS 지역의 현실이다. 다만 최근 한국 정부가 재외동포청 신설 등으로 고려인 지원 의지를 보이고 있고, 고려인 청년들도 루스키 코리어(Russian-Koreans)로서 정체성을 재정립하며 한국어 학습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3~4세대 고려인들 중 일부가 한국으로 역이주하여 한국 국적을 취득하거나, 중국 조선족과 국제결혼하는 등 정체성의 다변화도 일어나고 있다. 이는 향후 이들을 포용할 수 있는 융통성 있는 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예컨대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쓰는 고려인 청소년이 한국에 와서 겪는 언어장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내 한국어교육도 요구되고 있다. 이처럼 러시아/CIS 고려인 한글교육의 과제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이어져 있으며, 단순히 과거로 돌아가 한글만 쓰게 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맞는 이중언어 통합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다.
Ⅸ. 맺는 말
이 연구는 미국, 중국, 러시아( 및 CIS) 세 지역의 재외동포 한글 및 한국어 교육을 비교 고찰함으로써 각기 다른 환경에서 나타나는 현황과 문제점을 분석하였다. 세 지역 모두 언어를 통한 민족 정체성 유지라는 공통된 과제를 안고 있었지만, 정치적·사회문화적 조건의 차이로 인해 교육 체계와 지원 양상이 크게 달랐다. 미국은 ‘민간 자율형 주말학교 모델로 발전’해 왔으나 공식 학제 편입의 부재로 인한 한계가 있었고, 중국은 ‘국가 공교육 체계 속에 모국어 교육을 실시’해 왔으나 최근 국가정책 변화로 대폭 위축되고 있다. 러시아/CIS는 ‘언어 단절을 딛고 재출발하는 단계’에 있으며 여전히 제도적 기반 빈약 문제를 겪고 있다. 이런 가운데 재외동포 사회 내부의 교육 수요는 세대교체와 글로벌화 흐름에 따라 새롭게 변모하고 있다. 미국 동포사회는 다인종·다문화 배경의 학습자가 늘어나 한글학교의 역할 확대를 요구받고 있고, 중국 조선족 사회는 인구 감소 속에서 남은 학교들의 질적 강화를 통한 생존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이다. 러시아/CIS 고려인 사회는 기초 단계의 한글교육 수요가 큰 반면, 그것을 충족시킬 인적·물적 인프라 확충이 시급하다..
이러한 분석을 토대로, 재외동포 한글 및 한국어 교육의 발전을 위해 다음과 같은 종합 전략을 제언하고자 한다:
첫째, 재외동포 교육 관련 ‘법·제도의 통합적 정비’가 필요하다. 현재 대한민국의 재외동포 교육 지원은 재외동포청, 교육부, 문체부 등 여러 부처로 나뉘어 있어 효율성이 떨어질 우려가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범정부적 협의기구를 두고 재외동포 한국어교육에 관한 마스터 플랜을 수립해야 한다. 예컨대 ‘재외동포교육지원법’을 제정하여 한글학교와 세종학당, 한국학교 등 다양한 교육 경로를 하나의 법령 틀에서 지원·조정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이 법에는 재외동포 교육 목표와 원칙, 지원 대상과 범위, 재원 조달 등을 명시하고, 특히 교육과정 통합과 학력 인증 문제를 다룰 수 있을 것이다. 한글학교 출신 학생이 TOPIK 취득이나 한국 대학 진학 시 혜택을 받도록 하거나, 일정 기준 이상의 한글학교를 해외 민족학교로 공인해 주는 제도도 고려할 수 있다. 또한 동포 밀집국가들인 미국 및 중국 등과는 교육교류 협정을 통해 상호 학력 및 학점 인정, 교사 교류 등을 공식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중국 조선족 자치주 학교의 한국어 교과에 한국 교육부 인증 과정을 도입하거나, 미국 공립학교에 한글학교 이수 학점을 인정하는 방안을 현지 교육청과 협의할 수 있다. 이러한 법제 통합과 제도화는 재외동포 교육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고, 지역별 편차를 줄이는 기반이 될 것이다.
둘째, ‘지원기관 간 협업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재외동포청, 국립국제교육원, 세종학당재단 등은 각각 장점과 전문성을 갖고 있으므로, 정례적인 협의와 역할 분담의 명확화가 중요하다. 재외동포청은 한글학교 지원의 총괄 조정자로서 예산 배분과 커리큘럼 개발을 담당하고, 국립국제교육원은 해외 파견교원 연수 및 한국학교·교육원 운영을 맡으며, 세종학당재단은 현지인·동포 성인 대상 한국어 보급을 전담하는 식의 분업 구조를 확립할 수 있다. 이를 조정하기 위해 관계 부처와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재외한국어교육위원회’를 설치하여, 정기적으로 지역별 현황 정보를 공유하고 중복 투자를 방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현장에서 발생하는 한글학교와 세종학당 간 학생·교사 충돌 문제는 기관 간 협약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가령 일정 도시에서 세종학당을 신규 설립할 때 기존 한글학교와 협력 관계를 맺고, 대상 연령이나 수준을 분리하여 운영하는 식의 방침을 사전에 마련하도록 한다. 또한 지원기관과 현지 한인단체 간 소통 채널도 구축해, 사업 설계 시 동포사회의 실제 의견이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
셋째, ‘지역 맞춤형 정책’으로 각국의 특수성에 대응한다. 미국, 중국, 러시아 등은 재외동포 구성과 교육 여건이 판이하기 때문에, “하나로 통하는” 획일 정책은 효과가 떨어진다. 미국의 경우, 한글학교를 현지 교육제도와 연계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를 위해 캘리포니아 등 한인 밀집 지역 교육청과 협의하여 이중언어 프로그램에 한국어를 포함시키고, 한국어 교사를 현지 교사 자격 취득으로 연결시키는 시범 사업을 제안할 수 있다. 또한 토요학교 형태의 한글학교도 주정부 비영리교육기관으로 정식 등록하여, 주류 사회와 교류를 확대하고 재정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중국의 경우, 조선족 학교를 직접 지원하기는 어려우므로 간접 지원 및 교류 강화가 현실적이다. 예를 들어 연변대학 등에 한국어 교육 전문인력을 파견해 교사 연수 프로그램을 공동 운영하고, 조선족 교원들을 위한 한국 연수(언어문화연수, 대학원 장학금 등)를 확대하여 인적 역량 강화를 도모해야 한다. 아울러 조선족 학생들의 한국 유학을 체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한국 대학 예비과정과 같은 사전 한국어교육 과정을 개설하고 장학제도를 확충할 필요가 있다. 러시아/CIS 지역의 경우, 여전히 기초 단계 교육 지원이 시급하므로 한국어 교실 거점을 촘촘히 만드는 전략이 요구된다. 현지 고려인 문화센터, 한인회관 등에 한국어 강좌 개설 지원금을 지급하고, 일정한 수요가 확인되면 향후 세종학당 분원 설치로 발전시키는 등 단계적 접근이 바람직하다. 또한 CIS국가들의 공용어인 러시아어로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교재와 콘텐츠 개발을 지속하고, 러시아어권 매체를 통해 한국어 교육 프로그램을 송출하는 등 현지 언어 기반 홍보·교육을 병행해야 한다.
넷째, 교육의 ‘공공성 및 중립성 확보’를 위한 전략이 필요하다. 재외동포 교육이 특정 종교나 이념에 치우치지 않고 공익적 목표를 추구하도록 관리·감독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각 한글학교 지원 시 운영의 투명성과 중립성 요건을 평가에 반영하도록 한다. 예를 들어 학교 운영위원회에 다양한 배경의 학부모와 지역 인사가 참여하도록 유도하고, 종교기관 부설 학교라도 수업 내용에는 종교를 개입시키지 않겠다는 서약을 받는 식이다. 또한 한글학교 교사 연수 때 시민교육을 병행하여 다문화 감수성, 성평등, 종교 간 존중 등의 내용을 전달함으로써 학생들에게 개방적 가치관을 심어줄 수 있게 한다. 정치적으로도 남북한 어느 한쪽 편향 없이 한민족 공통의 문화로서 한국어와 역사를 가르치도록 교재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분단이나 이념 갈등 주제는 한글학교 교재에서 가급적 다루지 않고, 다루더라도 균형있게 기술하여 논쟁을 피하도록 한다. 일본 등 일부 지역에서 과거 민단·총련으로 학교가 갈라졌던 사례를 타산지석 삼아, 현재 남는 조선족 학교나 고려인 한글학교들은 정치적 중립을 견지하도록 지도해야 할 것이다.
다섯째, ‘차세대 재외동포를 위한 새로운 접근’이 요구된다. 디지털 네이티브인 재외동포 2~4세들은 전통적 교실 교육 외에 온라인과 현지 커뮤니티를 통한 학습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이들을 위해 글로벌 한인 청소년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온라인으로 서로 한국어와 공통 관심사를 공유하도록 하면 학습동기가 고취될 수 있다. 이를 위해 재외동포청 주도로 온라인 한글학교 플랫폼을 개발해, 각국 한글학교 학생들이 주어진 커리큘럼을 함께 수강하고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모델을 시험할 수 있다. 미국·중국·CIS 청소년들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한국어 말하기 온라인 캠프, 퀴즈대회 등을 개최하면 지역을 초월한 동질감과 경쟁심을 불어넣을 수 있다.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한글학교의 물리적 한계를 보완하면서 공공성이 담보된 형태로 운영되어야 한다.
끝으로, 재외동포 한글 및 한국어 교육의 궁극적 목표는 ‘모국과의 유대 강화와 동포의 역량 제고’라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할 필요가 있다. 언어는 문화와 정체성의 핵심이므로, 이를 지키고 발전시키는 일은 재외동포 사회의 지속 가능성에 직결된다. 이 연구에서 제시한 비교 분석과 제언을 통해 각 지역의 특수한 어려움이 해소되고 교육 수요-공급의 괴리가 줄어들며, 재외동포들이 언어를 매개로 모국과 소통하고 세계 속의 한민족으로서 긍지를 유지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맺으려면 대한민국 정부, 해당 국가 정부, 동포사회 간 삼자 협력이 필수적이다. 동시에 동포 교육의 공공성을 높여 누구나 차별 없이 모국어를 배울 권리를 누리게 하고, 중립성을 지켜 정치·종교와 무관한 순수 교육 활동으로 신뢰를 얻어야 할 것이다. 재외동포 한글교육은 21세기 한류 확산과 더불어 한국어가 글로벌 언어로 부상하는 흐름 속에서, 더 이상 주변부의 과제가 아닌 국가적 자산 형성의 과제로 인식되고 있다. 이제는 축적된 성과와 반성을 바탕으로 보다 체계적이고 통합적인 접근을 함으로써, 전 세계 한민족 차세대가 언어와 문화의 뿌리를 잊지 않고 동시에 거주국 사회의 모범적 구성원으로 성장하도록 지원해야 할 때이다. 정부와 민간, 동포사회 모두의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이 함께할 때, 재외동포 한국어 교육은 새로운 도약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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