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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2025.06.22 09:36
동포사회에 대한 혐오현황과 대응방안 모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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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6. 20. 다가치포럼 주제발표 동포사회에 대한 혐오현황과 대응방안 모색 김용필 동포세계신문 대표겸 편집국장
■ 발표내용 Ⅰ. 동포언론인 시각에서 바라 본 재한중국동포사회에 대한 소고 Ⅱ. 주요사건 사례 분석과 대응방안 모색 Ⅲ. 새 정부에 바란다.
Ⅰ. 동포언론인으로서 바로 본 재한중국동포사회에 대한 소고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한국사회에서의 중국동포에 대한 인식과 혐오현상은 시기에 따라 다른 양상을 띠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상황은 어떤가? 진단해 보고 대응방안을 함께 모색해보고자 한다. 필자는 2022년 한중수교 30주년을 맞이하여 <삼강총서 1>에 『시기별로 본 재한중국동포사회의 변화와 특징분석』을 게재한 바 있다.
▷1992년~1998년은 초창기로 보았다. 중국동포들은 TV드라마 등으로 한국을 알았지 직접 경험을 해보지 않은 상태에서 ‘한국 바람’에 강한 영향을 받았다. 한국인도 중국진출을 하였지만 한국사회 전반적으로 조선족에 대해서 잘 몰랐던 시기였다. 즉 만나보니 한국인은 “우리말로 언어가 통하네” 조선족은 “조선사람보다 잘 사고 친절하고 좋네” 라고 했고 북한 노래 ‘동포 여러분 형제 여러분 이렇게 만나니 반갑습니다’를 애창했다. 이 시기는 그래도 순수했고 반가웠고 한중수교로 열리게 된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있었지 않았을까? 그러나 반세기만의 재회의 기쁨은 잠시였다. 1996년 8월 남태평양 원양어선 페스카마호에서 조선족 선원들에 의한 한국인 선원 집단 피살 사건, 11월에는 조선족동포들의 한국초청사기피해 실태보고서가 충격을 준다. 이는 한국사회에서 조선족에 대한 첫 인상과도 같은 사건이었다.
▷1999년~2008년은 격변기로 보았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이다. 재외동포법이 공포되었지만 조선족, 고려인은 배제되었고 ‘동포차별 문제’로 대두되었다. 조선족은 ‘불법체류자’라는 고깔모자까지 씌어져 있었다. 외부에 신분이 노출되는 것을 꺼려하였지만 종교단체, 시민사회단체의 비호하에 용기를 내어 법적지위와 체류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호소하고 시위에 동참하고 철봉에 거꾸로 매달리고 삭발하고 집단단식에도 참여하였다. 더 이상 의지할 곳없는 동포들이 생존을 위한 인정투쟁에 동참한 것이다. 그 결과 대대적인 불법체류자 사면정책이 나오고 방문취업제라는 제도가 시행되었다. 그렇지만, 당시 불법체류자가 모여 사는 동네, 조선족 집거지, 연변거리로 이미지화 된 가리봉동에서 2004년 5월 왕건이파 사건, 2007년 4월 연변흑사파 사건 등으로 ‘조선족’에 대한 공포와 혐오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이 사건이 가리봉동을 배경으로 한 2017년 개봉작 <범죄도시>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하지만 영화에서 벌어진 그런 난투극은 실제 있지도 않았다. 가리봉동에서 왜 이 같은 현상이 발생했는지는 뒤에서 더 집중해서 논해보고자 한다.
▷2009년~2017년은 성장기로 보았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이다. 방문취업제 시행 이후 중국동포사회는 커다란 변화를 맞이한다. 방문취업비자 시행 후 2010년경부터는 서서히 재외동포 비자도 확대 시행되어 국내 체류 중국동포 인구는 30만명에서 70만명 대로 크게 늘어난다. 직업도 단순노무직에서 전문직업군이 생기고 자영업자들도 늘어난다. 중국동포 집거지도 여러 곳에 형성되고 상업거리도 활성화된다. ‘대림동’은 중국동포의 경제생활과 이미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곳으로 부상했다. 한중간의 교류가 활발했고 한류의 영향 등으로 중국에서 한국상품이 인기를 끌 때이다. 한국어와 중국어에 능통하고 한중 양국을 잘 아는 중국동포들에겐 정말 다양한 기회가 주어졌고 그 기회를 잘 포착한 이들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2011년 MBC 위대한 탄생 ‘백청강 신드롬’, 2014년 한국의 대표적인 유아 의류 브랜드인 ‘아가방’의 조선족기업인 인수 소식 등은 한국사회에 조선족동포에 대한 신선한 이미지를 주었다. 그러나 이 시기에 ‘조선족’에 대한 이미지는 대중매체를 통해 회화되고 악마화되었다. 2010년 영화 <황해>, 2012년 4월 수원 지동 <오원춘 사건>, 2013년 5월~2014년 5월 보이스피싱법을 풍자한 KBS개그콘서트 <황해>, 2014년 11월 <박춘풍 사건> 등으로 ‘조선족’ 이미지는 무섭고, 야만적이고, 연변거지이면서도 보이스피싱, 청부살인, 인신매매 조직폭력 등 돈만 주면 무슨 일이든 가리지 않고 벌이는 인물로 극화되어 미스미디어를 통해 혐오대상으로 재생산 되었다. 2017년에는 대림동을 배경으로 한 영화 <청년경찰>과 가리봉동을 배경으로 한 <범죄도시>가 최정점을 찍었다.
▷2018년~ 2022년(현재까지) 도전기로 보았다. 시기적으로 문재인정부와 윤석열 정부 때이다. 이 시기를 도전기로 본 이유는, 재한중국동포사회가 대내외적으로 풀어가지 않으면 안되는 많은 과제를 떠안게 되었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좋을 듯싶다. - 2016년 사드배치 사태로 한중관계에 균열이 생기고 이어 2000년 코로나19 펜데믹 상황이 이어지면서 중국동포의 대외적 환경은 어떤가? 매우 안좋아졌다고 생각한다. -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중국인에게 복수비자가 대량적으로 풀리면서 건설현장 등에서 저임금 노무로 중국동포의 일자리를 침해하는 현상이 생겼다. - 2019년 북한이탈주민 한송이 조선족남성 비하 막말사건으로 탈북동포와 중국동포 사이에 감정적 갈등의 불씨가 되었다. 2020년에는 코로나19와 관련하여 ‘조선족 간병인 전파설’이 강하게 일었고 3.15총선을 앞두고는 출처분명의 ‘어느 조선족의 고백’ 글이 온라인상에서 퍼져 ‘차이나게이트’이라는 논란까지 확대되었다. - 2021년에는 부동산 취득, 외국인 건강보험 관련 ‘내국인 역차별’ ‘무임승차’ 논란부터 조선족이 한국사회에서 18가지, 24가지 특혜를 받는다 - 2022년에는 6.1지방선거를 앞두고 영주자격자의 지방참정권 논쟁이 일었다.
내적으로도 풀어가야 할 과제들도 늘었다. 먼저 30, 40대 청년세대들은 한중간의 교류활성화로 여행사, 무역, 요식업 등 자영업자로 나서 성과를 이루었지만 사드배체 사태에 이어 코로나19 상황까지 겹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위기에 봉착했다. 한국진출 1세대들의 노후대비가 부족한 고령화에 접어들었고 중도입국청소년들의 진로와 교육도 주요 관심 사항이 되었다.
중국동포사회는 이런 도전에 대해서 어떻게 응대하고 한국사회에서 상생해 나갈 수 있을지 냉철하고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Ⅱ. 주요사건 사례분석과 대응방안 모색
과거에는 조선족에 대한 혐오현상이 중국동포 집거지에서 일어난 범죄사건과 이를 확대 보도한 대중매체의 영향에서 비롯된 면이 컸다. 그러나 사드배치 사태와 코로나19 펜데믹을 거치면서 그 양상이 ‘반중정서’와 맞물려 다방면으로 확대 형성되어 가고 있다고 본다. 그 결과 우리가 목도했듯이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계엄 선포ㆍ탄핵 정국’ 시기 그 정도가 더욱 심각해져 온라인상에서뿐만 아니라 오프라인 상에서도 표출되었다. 바로 지난 4월 17일 밤 서울 광진구 자양동 중국동포들이 상점을 많이 운영하는 건대양꼬치거리에서 벌어진 일이다.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로 구성된 ‘자유대학’ 회원들이 이곳을 찾아 거리시위를 하는 도중 혐중발언에 자극 받은 음식점 종업원과 마찰을 빚는 일이 발생했다. 지난 2025년 5월 13일 유엔 인종차별철폐위는 “한국에서 온오프라인에서 중국인을 포함해 무슬림, 이주노동자, 탈북자 등에 대한 차별 수준이 심각하다”고 지적하고 한국정부에 ▲가중 처벌하는 형법 개정 ▲정치인·공인의 혐오 발언 조사·처벌 ▲이주민·난민 편견 해소를 위한 공공 교육 캠페인 실시 ▲온라인 혐오 표현에 대한 규제 강화 등을 권고했다. 이에 한국정부나 한국사회도 유엔의 권고사항을 깊이 받아들여 실천에 옮긴다면 많은 문제가 해소될 것으로 기대된다. 새 정부가 들어서서 어떻게 할 것인지도 주요관심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중국동포사회가 정부가 한국사회가 알아서 해줄 것만을 바라고 수동적인 자세로 있는 것이 과연 최선일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과거 주요 사건을 반추해 보고 중국동포 스스로 할 수 있는 대응방안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다가치포럼의 주제토론은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사례분석#1. 원양어선 참치잡이 배에서 일어난 참극-1996년 페스카마호 사건
1996년 8월 남태평양에서 조업 중이던 온두라스 국적의 참치잡이 원양어선 페스카마15호에서 일어난 ‘선상 반란 사건’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동포 선원 6명이 공모하여 한국인 선장, 갑판장, 주방장 등을 포함 11명의 선원을 죽인 끔찍한 상황이 왜 일어났을까? 이 사건에 관심을 갖고 5년간 집중취재를 한 희곡 작자 임선빈은 ‘페스카마-고가잡이 배’를 써서 2017년 서울연극제 공식 선정작으로 무대에 올렸다. 이 사건을 깊게 파고들어간 유일한 작가가 아닌가 싶다. 필자는 2017년 5월 21일 이 연극을 직접 관람하고 작가의 이야기도 객석에서 들었다. 그리고 한 참 후인 지난 2024년 5월 20일, 페스카마호 사건을 좀더 알아보자는 취지에서 임선빈 작가와 전화통화를 가졌다. 임 작가가 들려준 내용을 정리하면, △페스카마호 선사와 노무송출회사 자체가 문제가 많았다는 점, △선장도 30세로 항해사 경험을 5년은 더 해야 하는데 급하게 되었다는 점. △생존한 인도네시아 선원들은 그대로 본국으로 송환되었다는 점. △생존자 한국인 항해사는 트라우마로 정상적인 대화가 어려웠다는 점, △조선족 선원은 서로 진술이 엇갈렸다는 점. △조선족선원 입장에서 변론을 맡았던 노무현, 문재인 당시 변호사가 정계로 진출하면서 사건이 더 이상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지 않고 ‘쉬쉬’ 하게 되었다는 점 등을 들을 수 있었다. 임 작가의 인상 깊은 워딩도 그대로 정리하면,
“페스카마호 사건은 예견돼 있었던 사건이었다.” “인도네시아 선원들도 정말 그 배를 타기 싫어했지만 어쩔 수 없이 배를 탔어야 됐죠. 그래서 다급하게 하나씩 불러 모은 한국인 선원들과 기존의 인도네시아 선원을 데리고 사모아로 가서 소화에서 조선족 선원을 처음으로 태우거든요. 이게 팩트예요.” “그러니까 조선족 선원들이랑 인도네시아 선원들을 더 억압하고 강제 노무에 해당되는 잠도 제대로 재우지 않고 그렇게 노동을 시켜야만 그 선사랑 약속한 고기의 물량을 시간 안에 잡을 수가 있었던 거죠.” “그런 환경 안에서는 사실은 한국인 선원이 됐든 조선족 선원이 됐든 인도네시아 선원이 됐든 누구도 그 극악무도한 노동의 환경에서는 모두 다가 가해자거나 모두 다가 피해자가 되는 거지요.” “정말 배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진실은 사실 아무도 몰라요.”
이런 의문을 갖는다. 같은 배에 인도네시아 선원도 있었는데, 왜 조선족 선원과 한국인 선원 간의 갈등이 커지고 비극적인 상황을 맞게 되었을까? 임성빈 작가의 ‘페스카마-고가잡이 배’는 바로 그 상황을 연극으로 보여준다. 극 속에 나오는 조선족 선원을 대하는 한국인 선원들의 대사를 보면 어떤 분위기인지 금방 느끼게 된다. 갑판장: 짱깨 새끼! 죽고 싶나! 정신 똑바로 차리라! 헤또: 어이, 짱깨 아저씨 갑판장님이 떼놈들 말 쓰지 말라고 해쑈제! 귓구멍에 × 박았나?"
사례분석#2. 가리봉동과 연변흑사파 사건
2000년대 초창기 가리봉동은 대표적인 중국동포 집거지였다. 2004년 5월 조선족 ‘왕건이파’ 14명이 무더기 구속되는 사건이 발생했고 2007년 4월에는 경찰에 의해 유흥업소 등으로 상습폭력행사를 하며 이권 다툼이 벌어졌다는 ‘연변흑사파’ 조직폭력배 두목 등 32명 검거 사건이 보도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가리봉동은 물론 중국동포 집거지는 조선족 조직폭력이 활개 치는 온상처럼 언론방송에 보도 되었고, 선정적인 기사제목으로 독자를 끌고자 한 가십성 기사들이 혐오현상은 재생산 되었다. 이에 조직폭력 이야기를 다룬 느와르 영화에 조선족이 악역으로 자주 등장해 폭력적이고 무자비하고, 청부살인, 인신매매 업자 등으로 묘사되기 시작했다. 즉, 불법체류자라는 고깔모자를 벗고 나니 조직폭력 범죄자라는 헐렁한 옷을 입혀준 꼴이 된 것이다. 가리봉동에서 산다고 하면 첫마디가 “거기 무서워서 어떻게 사느냐”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과연 그럴까? 이 당시 가리봉동에서 활동한 필자는 지금도 과대 포장된 이야기였다고 말하고 싶다. 2009년 10월 7일자 서울신문 ‘[탐사보도- 외국인 폭력조직 대해부] 국내 최대 옌볜흑사파 20곳 거점 전국조직화’ 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면,
조선족 폭력조직은 중국 북동부의 랴오닝(遼寧)·지린(吉林)·헤이룽장(黑龍江) 등 동북3성의 흑사파 조직원들이 국내에 들어와 결성했다. 경찰은 현재 16개 조직 2000여명이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2000여명은 조직당 80~100명을 기준으로 한 것”이라며 “현재 불법체류자만 50만명 중 조선족이 대부분인 것으로 추정돼 조직원은 그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고 밝혔다. 조선족들은 1998년부터 방문취업비자로 대거 입국, 공단 밀집지역인 ‘가리봉동’에 정착했다. 흑사파 조직원들도 속속 들어오면서 중국 지명을 딴 조직들이 생겨났다.
과연 위 기사내용이 2009년 상황과 맞는가? 기본적인 사실부터 전혀 맞지 않는 엉터리 기사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은 한국언론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가 아닌가.
“왜 그랬을까?” 필자는 주요하게 두 가지로 꼽는다. 첫째, 가리봉동이 첨담동 신도시로 재개발하고자 하는 계획이 있었다. 둘째, 가리봉동 같은 중국동포 집거지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게토화 현상을 우려했다.
사례분석#3. 2020년 4.15총선과 ‘어느 조선족의 고백’ 차이나게이트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을 뽑는 4.15 총선은 코로나19 초비상사태 속에서 치러졌다. 소위 ‘방콕’ 선거가 되었다. 주목된 현상은 선거를 앞둔 2월말경 온라인상에서 ‘어느 조선족의 고백’이라는 글이 돌기 시작했다. 국내 중국인, 조선족 유학생으로 구성된 댓글부대가 특정 정당에 유리한 한국여론 조작을 해왔다는 폭로성 글이었다. 도저히 믿기 어려운 글이었지만 보수야당은 검찰조사, 진실규명을 촉구하며 ‘조선족게이트’, ‘차이나게이트’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3.1절엔 ‘차이나게이트’가 실검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런 현상은 중국 조선족사회에도 충격을 주었다. 조선족으로서 2003년 한국에 유학을 와서 서울대에서 사회학 석ㆍ박사학위를 받고 중국중앙민족대학에 재직 중이던 박광성 교수는 3월 4일 “고국이 부끄럽다”면서 “조선족을 도구화하는 한국정쟁, 그만하라!”며 비장한 글을 중국동포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려 관심을 끌었다. 박 교수는 논란이 된 글을 두고 “문맥이나 표현방식, 사고에 있어 분명히 어느 정치에 열중하는 한국인에 위하여 조작된 것”이라면서 “현재의 조선족에 대한 부정적 여론은 자연발생적이 아닌 정치적 목적에 의하여 이용되는 일면이 있다”고 지적하고 나왔다. 그러면서 “세계 10위권에 올랐다고 자부하는 나라답게 이주역사가 100여년 넘는 해외동포사회를 정쟁의 수단으로 이용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한국에 대한 바램도 적었다. 그렇지만, 현재 한국사회는 어떤가? ‘어느 조선족의 고백’ 글이 출처불명의 글임에도 불구하고 이와 유사한 글이 재생산되고 있다. 이번 6.3조기 대선 시기엔 출처없는 ‘중국 공산당원, 중국인이 쓴 글’이 떠돌았다. 이 역시 중국인이 쓴 글이 맞을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글이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걸까?” 2023년부터 한국인의 대중인식조사를 실시해 오고 있는 <한국리서치>가 2025.2.19.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성별, 연령, 이념성향에 관계없이 상당수가 모두 중국에 부정적”이고 “보수층과 18세~29세가 중국에 대한 반감이 큰 편”으로 나타났다.
Ⅲ. 새 정부에 바란다
이재명 대통령은 제21대 대통령 당선인 신분으로 한 첫 수락연설에서 강조해 말한 표현은 ‘증오와 혐오, 대결이 없는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공동체’를 만들겠다는 것이였다. 국민으로부터 맡겨진 첫 번째 사명을 언급하면서 “증오·혐오가 아니라 인정하고 협력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그런 세상을 만드는 것”을 강조해 말했고 다섯 번째 사명에서도 “남녀로, 지역으로, 노소로, 장애인·비장애인, 정규직·비정규직, 기업가와 노동자, 이렇게 틈만 생기면 편을 갈라서 서로 증오하고 혐오하고 대결하게 하지 않겠다”면서 “혐오와 대결을 넘어서서 존중하고 공존하고 협력하면서 함께 어우러져 행복하게 살아가는 진정한 공동체”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말미에서도 “국민들이 편을 갈라 증오하고 혐오할 필요는 없지 않냐”면서 국민을 통합시키는 대통령의 책무를 강조하면서 “어우러져 함께 살아가는, 공평하게 기회를 함께 누리는 억강부약의 대동세상을 우리 함께 만들어 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런 이재명 대통령의 생각이 한국이 좋아 한국에서 살아가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적용되어 진짜 새로운 대한민국 사회를 열어가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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