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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무의 달인에게 묻다

김인철대사_연합뉴스.jpg

<김인철 주필리핀대한민국대사의 외교부 대변인 시절 모습 >

 사전적 정의로 '정무(政務)'는 정치상의 사무 또는 행정상의 사무로 풀이한다. 선거철 입후보하는 후보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홍보문구 중 '탁월한 정무감각'을 내세우거나, 언론으로부터 주목받는 이들이 있다. 

 최근 설립이 가시화된 동포청 설립 요청이 빗발쳤던 이유도 각 부처에 분산되어 있던 행정업무를 한군데로 모아 처리해 달라는 해외거주 재외국민과 재외동포들의 요청이 일부 있었기 때문이다. 해외에 살다보면 주재국 정부와 우리 정부의 행정을 동시에 봐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일상에서 국민인 우리가 접하는 행정 수요는 쉽게 주민 센터 업무(출생및사망,결혼및이혼 등 가족관계 업무, 생활 전반에 관한 행정 등)를 떠올리게 된다. 이외에도 교육과 복지, 납세와 병역, 치안과 교통등 다양한 분야의 전반적인 행정 업무가 주민 센터, 구청 및 부처로 연계된다.

 필리핀에 살면서 한국과 가장 많이 비교대상이 되는 것이 행정업무의 용이성과 처리 속도, 민원인을 대하는 관의 태도이다. 필리핀은 일단 서류하나를 떼더라도 하루 종일 투자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기다리고 또 기다려 서류 한 장 발급 받는다. 무더운 날씨 속에 장시간 기다리다 보면 지치고 짜증이 나기 일쑤이다. 그럼에도 필리핀 사람들을 불만이 없다. 필리핀 사람들의 성격이 느긋하고 좋아서가 아닌 일사천리 행정서비스를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관공서에 갈 경우 반바지나 슬리퍼 차림도 필리핀 사람들에게는 자제해야 할 덕목으로 꼽는다.  심심치 않게 복장불량을 이유로 관공서 문 앞에서 입장문제로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이 경우 대부분 필리핀 현지 실정에 어두운 외국인들(한국인이 많다)이다. 말 그대로 필리핀 관은 국민들에 봉사하는 자세가 아닌 군림하는 스탠스를 취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전 세계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는 훌륭한 접근 용이성과 빠른 처리속도를 자랑하는 전자정부 시스템을 지니고 있다. 그만큼 많은 예산을 시스템에 투입하기도 한다. 또한 담당자와 처리기간이 명시된 신뢰성 높은 행정업무 체계도 구축되어 있다. 민원인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우리나라 공무원들은 복지부동, 늦장대응 탓으로 민원인들로부터 싫은 소리를 듣긴 하지만 그래도 타국 공무원들과 비교해보면 군림보다는 친절 봉사한다는 스탠스를 일단 취한다.

 필리핀 관공서의 업무처리를 한번이라도 경험한 한국인들은 하나같이 한국의 빠르고 정확한 행정업무에 크게 만족해한다. 이처럼 뛰어난 공무원들의 근무 자세와 행정 시스템은 국민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국가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일례로 법인설립 소요 기간을 비교해 보면 한국은 온라인 처리시 4일이지만 필리핀은  Express Lane의 경우 1주일, Regular Lane은 1개월가량이 소요된다고 한다. 이나마도 투자관련 법안 통과와 절차 축소를 통해 줄어든 기간이다. 

 ◆ 필리핀인 비자발급 적체가 우리 사회 미치는 영향

 최근 필리핀인 한국행 비자발급 적체가 불거져 필리핀 언론에 보도된 바가 있다. 소식통에 의하면 하루 300명의 필리핀인 비자를 법무영사 3명과 행정직원들이 담당한다고 한다. 근무일 기준으로 보자면 한 달에 대략 6600명만이 비자를 받는다. 비자발급업무는 법무영사들의 주된 업무이긴 하지만 법무영사들은 이 외에도 다양한 업무(예. 우리 국민 범죄자 추방 및 송환 관련 지원 업무, 결혼 이민자 포함 비자 발급 대상자 인터뷰 업무)등을 처리한다.

 필리핀인 비자발급 업무가 대한민국 국민과 무슨 하등의 상관이 있냐고 말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생각해보자! 필리핀인의 비자발급 요청 수요는 크게 ○ 관광비자 수요 ○ 외국인 근로자 수요 ○ 다문화가정 수요 등 3가지로 분류된다.  관광 비자는 국내 관광업계 회복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다. 외국인 근로자는 이들을 요청하는 국내 중소기업이나 지자체(농사일을 돕는 계절근로자 수요)등에 영향을 준다. 끝으로 다문화 가정은 가족관계에 있는 국민들의 삶에 영향을 준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중 만약 당신이 비자를 발급해주는 법무영사 입장이라면 어느 경우를 우선하고, 비중을 두어 일처리를 해야 할까? 모두 국내 산업 활동과 국민들의 삶에 영향을 주기에 쉽지 않은 결정일 것이다. 

 지난 호에 다루었다시피 우리 정부는 내년에 역대 최고라는 11만 명의 외국인 근로자를 받아들일 계획을 세웠다. 건설, 조선, 제조, 계절근로자까지 많은 업종에서 목이 빠져라 외국인 인력 입국을 기다리고 있고, 코로나로 망가질 때로 망가진 관광산업 역시 외국인 관광객을 학수고대 기다리고 있다. 

 우리나라가 자랑처럼 내세우는 무비자 입국이 관광산업에 끼치는 영향은 엄청나다. 입장 바꿔 만약 한국인 관광객이 필리핀에 관광오기 위해 사전에 재산증명 해가며 비자를 받아야 한다면 오겠는가?  바로 선택지를 무비자 국가로 바꿀 것이다. 그만큼 관광산업에 있어 무비자 방문은 큰 역할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리핀 사람들이 비자를 받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보다 소득수준이 낮은 국가이기에 불법체류를 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필리핀을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라고 말하지만, 우리나라 국민 평균보다 재산과 소득이 많은 부유층을 인구의 10%만 계산해도 1000만 명이 넘는다. 실제로 홍콩이나 싱가포르 같은 경우는 우리보다 국민소득이 높은 도시국가이지만, 필리핀 사람들이 무비자로 방문할 수 있는 국가이다. 그러기에 필리핀 관광객들도 해외여행 선택지로 인기가 많은 편이다. 

 최근 필리핀의 유명가수인 샤론 쿠네타가 한국을 방문해 명품 판매점에 입장하려 했으나 거절을 당했다고 자신의 유튜브에 올린 일이 있었다. 그녀의 남편인 프랜시스 팡길리난은 현직 상원의원이다. 물론 해프닝으로 그쳤지만 뒷맛이 개운치 않다. 

 한국사람 입장에서 그녀가 유명가수임을 알아볼 이는 필리핀에 오래 산 이들 빼고는 없을 것이다. 또한 한국사람 특유의 차별의식과 평등의식이 혼합 발동해 '너희 나라에서 유명한 사람이라 해서 그래서 뭐? 어쩌라고?"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샤론 쿠네타보다 더 인지도가 있는 전설적인 복싱영웅이자 전직 상원의원인 '매니 파퀴아오'는 어떨까? 그의 재산은 2022년 기준 3억 7500만 달러(한화 약 4935억 원)이다. 파퀴아오도 한국행 비자를 만들 때 재산증명을 하고 비자를 만들었을까 궁금해진다. 법무영사들 만이 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이처럼 필리핀인 비자발급이 적체되자 필리핀에 오래 산 이들 치고, "어떻게 손을 써서 비자를 빨리 받을 수 없느냐" 하는 의뢰를 받아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소위 '익스프레스피' 라고 하는 급행료를 넘어 전형적인 필리핀식 '인맥동원 수소문 솔루션'이 동원된다. 일반적인 상식에선 '선착순'을 떠올리겠지만, 이러한 청탁이 윗선 급으로 내려오는 경우라 자신의 권한 내에서 처리순서를 변경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 대사관의 비자발급 이게 최선인가?

 현재 대사관은 비자발급에 있어 영사24를 통한 예약과 더불어 비자처리대행사를 통해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개인 비자발급 요청은 긴급한 사유가 아닌 이상 받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영사24에 접속해보면 내년 2월까지 예약일 자체를 잡을 수가 없다. 이미 예약이 모두 찬 것으로 나오고 있다. 앞서 언급한 관광, 근로자, 다문화가정 모두 저마다 사정이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관광공사에서는 한국으로 관광오라고 연일 국내외에서 예산 써가며 프로모션을 펼치고 있다. 지자체는 앞 다투어 필리핀 지자체와 MOU, MOA를 체결해가며 외국인력 수급에 앞장서고 있다. 이제 모든 공은 적시에 비자를 발급해주는 대사관 법무영사들에게 돌아간다. 

 일반 기업체라면 코로나로 억눌렸던 관광수요가 검역기준 완화나 해제에 따라 폭발적으로 늘 것을 예상해 이에 대한 대비책을 세웠을 것이다. 물리적으로 시간을 늘릴 수는 없으니 담당자를 24시간 풀가동해서 비자발급 업무 계획을 세웠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관공서는 대사관 근무 영사 정원 하나 늘리는 것에도 수많은 절차와 지침이 필요하기에 이러한 사전 수요 예측 및 대비가 불가할 것이다.   

  이 부분에서 바로 '정무적인 판단'이 개입한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환율이 올라 외교부 예산이 부족하니 국회에 증액 요청을 했다. 이것이 정무적 판단이다. 환율만 오르는 것이 아닌 비자발급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 일손이 딸리니 인력을 증원해 달라는 것도 정무적 판단이다. 결국 책임 있는 권한자가 사안의 심각성이나 시급성을 인지하고 대처하는 정무적 판단이 개입해야 한다. 

 법무영사 인력을 대폭 증원(파견 정원 증가에 따른 예산 확보 및 발령 절차상 문제점 때문에 힘들다면 일시적인 파견까지 고려)하든, 비자 발급 편의를 대행해주는 대행사뿐만 아니라 실제 심사의 총량을 늘릴 수 있도록 비자신청센터를 구축하든 해야 할 것이다. 또한 긴급성과 우선순위를 정해 발급 목적에 따라 처리 라인을 나누는 것도 고려해 볼 만 하다. 

 그래서 우리정부는 비자신청센터라는 것을 외국에 두고 운영 중에 있다. 비자신청센터는 비자신청인에 대하여 보다 편리하고 신속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대한민국  법률에 따라 재외공관(대사관 및 영사관)의 비자신청 및 교부 업무를 위탁 받아 수행하고 있다고 한다.

 전 세계 7개 국가 13개 센터(○ 중국: 광저우, 칭다오, 상하이, 청뚜, 우한 ○ 베트남: 하노이, 호치민 ○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 몽골: 울란바토르 ○ 독일 : 베를린 ○ 프랑스 : 파리 ○ 영국 : 런던)가 운영 중에 있다.

 2020년 말 김인철 대사 부임 이후 한인사회에는 '김 대사가 정무분야 업무를 관장하고, 한인사회 관련 업무는 이규호 총영사에게 일임했다','김 대사가 정무 달인이라고 칭찬이 자자하더라'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묻고 싶다. 필리핀인 비자발급 업무는 정무 관련 업무인가? 아니면 한인사회 관련 업무인가? 비자발급은 외교부 업무가 아니기에 외교부 책임이 아닌 법무부 책임인가? 국익과 국민의 불편함을 덜어 줄 대사관의 책임 있는 해명과 해법을 기다려 본다.  

  ※ 본지 커버스토리는 재필리핀한인언론인협의회와 해외동포언론사협회를 통해 세계 각국 교민매체에 함께 공유됩니다. 하이필스는 2003년 9월 7일 창간. 필리핀에서 한국 일요신문과 제휴를 통해 필리핀 일요신문 제호로 2020년 3월까지 매주 지면 인쇄 발행을 하였으며, 2020년 3월 코로나 보건위기를 기해 하이필스로 제호를 변경하고 현재까지 월 4회, 매주 온라인 발행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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